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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판 읽기가 어려운 사람을 위한 외식의 작은 기술들

    좋은 식당의 메뉴판은 종종 작은 글씨로 멋스럽게 디자인되어 있다. 어두운 조명 아래 검정 종이에 회색 글씨로 적힌 메뉴를 보고, 나는 안경을 두 개 겹쳐 쓴 적도 있다. 시력이 약한 사람, 인지 처리가 느린 사람, 외국어 메뉴 앞에 선 사람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렇다고 식사 자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메뉴판이라는 작은 장벽을 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어떤 것은 매장이 준비해주고 어떤 것은 자신이 미리 준비해 가면 된다. 처음 가는 매장에서도 당황하지 않게 해주는 도구들이 의외로 많다.

    큰 글씨 메뉴를 가진 매장 찾기

    최근 한국의 일부 카페와 베이커리는 메뉴판을 액자형으로 만들어 카운터 옆 벽에 크게 걸어두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디자인적으로 깔끔할 뿐 아니라 시력이 약한 손님에게도 친절하다. 작은 종이 메뉴판을 손에 들고 보는 부담이 사라지고, 매장의 모든 손님이 같은 메뉴 정보를 동등하게 받는다.

    일부 매장은 큰 글씨 메뉴(large-print menu)를 별도로 비치한다. 보통 매장 카운터 안쪽에 한두 부 있고, 요청하면 가져다준다. 영어권 매장에서는 비교적 흔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드물다. 매장 SNS나 홈페이지에서 큰 글씨 메뉴 보유 여부를 미리 검색해볼 수 있다.

    메뉴를 종이 대신 태블릿으로 제공하는 매장도 늘고 있다. 태블릿 메뉴는 손가락으로 글자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시력이 약한 사람에게 더 친절하다. 단점이라면 직관적인 종이의 정리감이 사라진다는 정도다. 그래도 가독성을 잃는 것보다 낫다.

    점자 메뉴는 한국에서 매우 드물다. 일부 호텔 레스토랑과 시각장애인 협회의 협력 매장이 보유하고 있지만, 일반 매장에서는 거의 찾기 어렵다. 점자 메뉴가 필요하다면 예약 시 미리 매장에 요청해두는 것이 좋다.

    휴대폰 카메라의 활용

    아이폰의 돋보기 앱(Magnifier)도 의외로 강력한 도구다. 카메라를 켜고 줌을 최대로 올리면 일종의 휴대용 확대경이 된다. 메뉴판이 어두운 색이거나 조명이 약한 매장에서 이 앱이 큰 도움이 된다.

    최근 휴대폰 카메라에는 텍스트 확대 기능이 기본으로 들어 있다. 메뉴판을 사진으로 찍어 손가락으로 확대하면 어떤 메뉴판도 큰 글씨로 변환된다. 더 편리한 것은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이다. 아이폰의 ‘Live Text’와 안드로이드의 ‘구글 렌즈’는 사진의 글자를 인식해 큰 화면에 보여주거나 음성으로 읽어준다.

    이 기능은 외국어 메뉴 앞에서도 강력하다. 일본 식당의 한자 메뉴, 유럽 비스트로의 손글씨 메뉴를 카메라로 비추면 즉시 번역되어 나타난다. 도쿄의 작은 라멘집에서 처음 이 기능을 써봤을 때, 외국인 손님이 가지는 메뉴 앞의 불안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휴대폰 하나로 언어 장벽이 사라지는 시대다. 미식 여행이 가능해지는 작은 도구들에서 이런 도구 활용을 좀 더 다룬다.

    알레르기와 식이 제한 정보의 표기

    메뉴판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가격이 아니라 알레르기와 식이 제한 표시다. 한국 식약처가 의무 표시로 지정한 22종 식품은 메뉴명 옆에 작은 숫자나 기호로 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매장에 따라 표시가 모호하거나 누락된 경우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주문 전 직원에게 직접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비건, 글루텐프리, 락토프리 같은 식이 제한도 메뉴판에 명시되어 있으면 좋다.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직원에게 물어보면 대안 메뉴를 제안해주는 매장이 많다. 좋은 매장의 직원은 자기 매장의 메뉴를 식이 제한 관점에서도 잘 알고 있다. 위키피디아의 식품 알레르기 항목은 외식 시 알레르기 정보 확인이 왜 중요한지 의학적 배경과 함께 다룬다.

    직원과의 소통이 메뉴판을 대체한다

    메뉴판을 잘 읽지 못한다면 직원의 추천에 기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늘 가장 자신 있는 메뉴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충분하다. 좋은 직원은 그날의 좋은 재료와 셰프의 컨디션을 알고 있고, 자신의 추천을 자랑스럽게 제안한다.

    또한 알레르기나 식이 제한이 있다면 그 정보를 먼저 전달하고 추천을 받는 것이 효율적이다. 메뉴판의 모든 항목을 자신이 일일이 확인하는 것보다, 매장의 정보를 빌려 쓰는 편이 빠르고 정확하다. 매번 가는 단골 매장이라면 이런 소통이 더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레스토랑 점검 항목과 첫 방문 전 확인할 것들에서 다룬 사전 정보 수집의 원리가 메뉴 영역에서는 직원과의 대화로 확장된다.

    코스 메뉴와 단품 메뉴의 차이

    코스 메뉴는 셰프가 미리 설계한 흐름이라 식이 제한을 적용하기 어렵다. 한 코스만 빼달라고 하기 어색하고, 매장의 미적 구성도 흔들린다. 식이 제한이 있다면 코스보다는 단품을 골라 자신에게 맞는 조합을 만드는 것이 편하다.

    다만 좋은 파인다이닝은 식이 제한이 있는 손님을 위해 코스를 재구성해주기도 한다. 예약 단계에서 미리 말하면 셰프가 그 손님 전용 코스를 짜는 경우다. 가격은 동일하게 받고, 메뉴만 조정한다.

    한 번 가본 매장의 메뉴는 휴대폰에 저장해두는 습관도 도움이 된다. 다음 방문 시 메뉴를 다시 읽지 않아도 되고, 그 사이에 메뉴가 바뀌었는지도 비교할 수 있다. 단골 매장이 늘어날수록 이 작은 데이터베이스가 외식의 부담을 줄여준다. 식이 제한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자료가 된다.

    외국인 손님이 많은 한국의 매장은 영어 메뉴를 별도로 갖춘 경우가 많다. 영어 메뉴가 한국어 메뉴보다 글씨가 더 크고 식이 정보 표기가 더 명확한 경우도 있다. 한국어 메뉴가 어렵다면 영어 메뉴를 함께 요청해 비교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매장에 따라 일본어 메뉴, 중국어 메뉴를 갖춘 곳도 있다.